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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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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의 재구성
작성일
2016-09-21 10:22:05
작성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재 교수
조회
1448

공황장애의 재구성
 

왜곡된 생각의 대가

 

-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재 교수 -

 

방송인 이경규, 배우 차태현, 하유미, 가수 김장훈. 별다른 공통점이라곤 없을 것 같은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연예기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쉽게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공통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대중매체에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유명인들 덕분에 공황장애에 관한 관심이 최근에 부쩍 늘어났으며 실제로 병원에 내원하는 분 중에 자신이 공황장애가 아닌지 꼭 집어서 물어보는 경우가 늘어남을 실감하고 있다. 이미 수없이 많은 공황장애 관련 정보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황장애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보다는 질환에 대한 보다 상식적이고 자세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먼저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상상해 보자.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한 골목길을 걷다가 갑자기 남의 집 대문에서 덩치 큰 개가 뛰쳐나와 덮칠 듯이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다. 놀란 나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외에 어떤 생각도 떠올리지 못한다.
터질 듯 요동치는 심장, 아무리 쉬어도 갑갑한 숨,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 타오르는 갈증 등 단절되고 찰나적인 인식만 있을 뿐 나는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한참을 도망쳐 골목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개가 더는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정지하였다. 숨을 고른다. 심장 박동이 잦아들고 주변이 다시 나의 시야에 들어온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이처럼 매우 급한 경험을 한 번쯤은 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런 매우 급한 상황에서 급변하는 우리 몸의 반응을 '응급반응'이라고 한다. 또는 어쩔 줄 모르는 상태라는 의미에서'공황발작'이라고도 한다.
응급반응은 매우 급한 외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폭발적인 신체적인 반응을 특징으로 하며 상황이 종료되면 몸은 이내 정상 상태로 회복된다. 여기까지는 별반 이해가 어렵거나 이상한 점이 전혀 없다. 그럼, 앞선 상황에서 '큰 개' 부분을 빼 보자.
늘 다니던 골목길을 걸어가던 중에 이유 없이 몸이 갑자기 요동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곳에 계속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치듯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내 멀쩡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생각해 봐도 별다른 원인이 없다.
오히려 헛웃음이 나고 별것 아니겠지 하고 무시한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자 더 이상은 무시를 할 수 없게 된다.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나 '큰 개' 같은 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다. 기껏 찾은 것이 고속도로 운전, 엘리베이터, 붐비는 마트였지만 이런 곳을 피해 다녀도 공황발작은 여전히 발생한다.


집에서 TV를 보다가도 오고 친구랑 식사하다가도 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걱정은 점점 깊어지고 외부에서 원인을 못 찾는다면 자신 내부의 문제일 것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한다. 생기는 증상마다 진료를 받으러 병원을 간다. 어지럼증, 손 저림은 신경과, 구토할 것 같다는 느낌은 소화기 내과,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건 호흡기 내과, 심장 박동이 심한 건 순환기 내과. 어디를 가도 별다른 이상을 찾지 못하고 의사는 정확한 대답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불안을 유발할만한 상황을 무차별적으로 회피하는 소극적인 방법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피해자는 있는데 범인은 잡히지 않고 그저 범인이 나타난 곳만 겁에 질려 피해 다니는 미궁에 빠진 사건과 같다.
이것이 바로 공황장애의 발생과정이다. 공황장애를 경험하신 분이라면 이 글에 100% 동감할 것으로 확신한다. 공황장애를 경험하지 않으신 분이라도 '큰 개' 같은 외적인 원인이 없이 공황발작이 발생하면 문제가 훨씬 복잡해질 수 있음에 충분히 공감하실 것이다. 앞선 이야기를 바탕으로 공황장애의 몇 가지 중요한 핵심을 정리해 보면
첫째, 통상적으로 놀랄만한 상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생기는 공황발작이 바로 공황장애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공황발작의 원인을 찾고 그것을 피해 보려는 노력은 질병의 본질을 모르고 저지르게 되는 잘못된 질병 행동이다. 그러나 공황발작이 너무나 두려운 환자들은 공황발작이 이유 없이 무작위적으로 온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끊임없이 예측을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런 상황을 회피하려고 한다. 흔히 이런 노력은 지나치게 마련인데, 조심해야할 상황은 점점 더 늘어나고 환자는 공황장애를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갈수록 무기력해진다. 따라서 치료를 위해선 회피반응으로 대표되는 이런 부질없는 노력을 중단하겠다는 결단이 우선 필요하다.
둘째, '큰 개'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듯이 응급반응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리적인 반응이다. 따라서 외부의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생기는 공황발작도 여전히 정상적인 생리반응의 범주 안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즉 공황발작이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발생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뿐, 공황발작 자체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보고 두려워하는 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셋째, 공황발작은 말 그대로 발작이다. 발작은 영어 'attack'을 한역한 것으로 특수부대가 적진을 기습 공격하고 순식간에 빠져나오듯, 공황발작도 길어야 30분, 통상적으로는 채 10분을 넘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공황발작 중에 드는 죽을 것 같다거나 미칠 것 같다는 생각조차도 잠시 뒤에는 사라진다는 확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7년간 공황장애 집단인지행동치료를 해 오면서 공황장애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대처가 질병의 경과에 얼마나 중대한 역할을 하는지 절감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20년간 버스를 못 타고 있는 60대 노인을 뵌 적이 있다. 40세경에 공황장애가 발생했는데 버스를 타면 갑갑해서 뛰어 내리고 싶어지기 때문에 주로 걸어 다니고 급하면 택시를 탔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져서 요즘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오토바이는 위험한데 자가용은 안타시나요?’라는 질문에 ‘몰고 다닐 능력은 없다’고 했다. 20년간 공황장애에 비정상적으로 적응하느라 겪은 환자의 고통이 묻어나는 말 같아 몹시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믿고 실천에 옮긴다면 공황장애 대한 심리적 부담을 훨씬 줄일 수 있으며, 비록 가끔 때 아닌 고통이 찾아온다 해도 이런 태도를 고수한다면 공황장애는 결국 극복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